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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힘겨울 때 또는 담대한 마음이 필요할 때 또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김남길 주연의 드라마 <나쁜 남자>와 <상어>를 본다. 최근에는 한소희 주연의 <마이 네임>도 추가되었다. 셋 모두 복수극이다.드라마 속 인물들의 복수는 간단하지 않다. 그들이 무너뜨리려는 현실은 거대해서, 그들은 복수를 준비하는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하게 살아간다. 심지어 소원하던 복수를 이뤄나가면서도 그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덤덤하게 고통을 받아내며 복수를 이어나간다.
그들은 복수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다. 복수를 선택한다는 것은 혹독한 삶을 선택한다는 의미였다. 쾌락과 휴식이 없고 고통과 인내만이 가득한 삶을 선택한 것은 놀라워 보이지만 실은 그들에겐 그것이 최선이었다. 복수를 외면했다면, 그들은 평생 공허함과 결핍감에 시달리며 조금씩 메말라갔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복수를 이뤄내지 않고서는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남들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손에 쥔 그 평범한 일상을 얻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 투쟁해야 했다. 더 슬픈 건, 아주 엄밀히 따지지 않는 한, 삶 전체를 바친 투쟁이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삶의 의미는 오랫동안 내 제1의 화두였다.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좋은 삶일까. 여러 책을 읽고, 여러 강의를 듣고, 여러 인물을 보아도, 나는 선택하지 못했다. 무엇도 와닿지 않았다. 의미를 추구하는 데 있어 나는 강박적이었다.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산소가 제일 중요하니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거나 감성적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누군가 이 음악을 듣고 안 좋은 일을 저지르면 어떡하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인간인 내가 완전성에 매몰된 이상,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오래고 병적인 강박은, 시간을 죽이려고 멍하니 보던 오락 드라마에 부서졌다. 오직 복수 하나를 위해 자신의 세상 전부를 내던지는 저들의 삶은, 그때의 나에게 눈부신 감동이었다. 저 혹독하면서 무의미한 삶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나도 저들처럼 살고 싶다, 나도... 저들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나에게는 세상 전부인 삶을 살고 싶다. 그 바람들로 나는 비로소 해방되었다.
감성은 가짜를 분별하는 데 탁월하다. 가짜가 분별되면 삶은 정돈되고, 정돈되면 몰입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으면 충만해진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복수를 말끔하게 성공시키지도 못했고, 복수를 끝내고 나서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쏟아낸 저들의 삶은 분명 충만했을 거라고 믿는다. 허울 좋은 말이 아니다. 인생 전부를 걸고 싸워 결국 얻어낸 전리품 하나 없어 보여도 저들의 삶이 대다수 수동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결코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멀리 앞서있다고 나는 진실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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