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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주차를 했다. 빼려고 보니 앞뒤 간격이 좁았다. 차를 빼는 동안 친구가 봐주기로 했다.
핸들을 꺾고, 먼저 후진을 했다. 아주 천천히.
후방 센서 경고음이 최대치로 울렸을 때 전진 기어로 바꿨는데 친구가 말했다.
"더 와도 돼."
그래? 그래 후방 센서 경고음이 최대치로 울려도 공간이 어느 정도 있으니까. 친구가 봐주고 있으니, 앞뒤 최대한으로 움직여서 서너 번 왔다갔다 할 거 한두 번으로 끝낼 수 있다면 그게 낫지 싶었다.
아주 천천히 후진했다.
"더, 더, 더, 더."
후방 센서 경고음이 최대치로 울린 상태에서 꽤 움직였지만, 나는 어느 새 친구만 믿고 있었다. 내 눈의 거리감과 후방 센서 경고음을 지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쿵. 충돌. 정적이 흘렀다.
친구는 왜 STOP을 외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는 저 나름대로 신호를 줬을 것이다. 주먹을 쥐어 수신호를 주었다거나, 더더더더, 라고 외치던 걸 멈췄다거나, 후방 센서 경고음이 최대치로 울렸으니 운전자가 적당히 후진하다 전진 기어로 바꿀 거라고 생각했다거나 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친구가 멈추라고 말할 줄 알았지만, 그건 오롯이 내 생각일 뿐이다.
타인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명료한 문장을 쓰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계약이 필요하다. 후진을 하면서 "멈추라고 말해."라고 분명히 말을 해뒀더라면 서로간 오해는 없고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 더. 운전대를 잡았다면 곧 결정권자고 책임자다. 그렇다면 어느 한 곳에 기대지 않고 종합적이고 주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내 눈이 주는 거리감, 기계가 주는 경고음, 친구가 보내는 신호. 어느 것이든 오해가 있을 수 있고 착오가 있을 수 있다. 종합적이고 주도적으로 판단하려 하면 신중할 것이고 실수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