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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를 하러 헤어숍에 갔다. 카운터 직원은 찾는 디자이너 선생님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말하지만 속으로 남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로서 같은 남자에게 받기 싫은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남자 디자이너 선생님들은 대개 손이 거칠다. 커트를 하는 동안 머리털 몇 가닥이 뽑히고 귀 부분이 긁히는 일이 다반사다. 슬프게도 이번엔 남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배정됐다. 찾는 디자이너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배정된 선생님은 그 헤어숍의 원장이었다. 내 앞 차례에 다른 남자 손님이 그 원장 선생님에게 커트를 받고 있었다. 커트가 끝나고 남자 손님이 활짝 웃으며 원장 선생님께 인사했다. 머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원장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보통의 디자이너 선생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원장 선생님의 물음에는 아주 조금 더 손님의 입장에서 바라본 디테일함이 묻어 있었다. 커트를 하는 과정도 거칠지 않았다. 머리털이 한 가닥도 뽑히지 않았고 귀가 긁히지도 않았다.
커트 후 샴푸를 하고 완성된 머리를 볼 때마다 사실 마음에 든 적이 없었다. 저마다 그렇겠지만 나 또한 내 취향이 있다. 그 취향대로 머리를 말려야 마음에 든다. 디자이너 선생님들은 당연히 내 취향을 모를 테니 내 마음에 들도록 머리를 말려주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동안은 샴푸 후 머리를 내가 직접 말렸는데, 손님이 직접 머리를 말리고 있으니 뒤에서 디자이너 선생님이 뻘쭘해 하시더라. 그걸 본 후로는 그냥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드라이를 맡기는 대신 모자를 챙겨간다.
이번엔 어땠을까. 샴푸 후 드라이를 하고 완성된 내 머리는 이번에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러나 모자를 꼭 써야 할 만큼 싫지도 않았다. 미세한 차이다.
그러나, 사실 그 미세한 차이가 전부다. 고객은 그 미세한 차이로 인해 마음을 바꾼다.
얼마 전 OTT 플랫폼을 바꿨다. 주요 기능은 기본이다. 승부는 디테일함에 있다. 그 플랫폼의 디자인이 사용자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버튼을 눌렀을 때 화면구성이 어떠해야 사용자에게 쾌적함을 제공하는지. OTT 플랫폼을 바꾸고 나서 금요일 저녁 맥주를 앞에 둔 내 기분은 유의미한 변화를 맞았다.